류주기, 유수초초, 안심기 - '24 신작 중드 찍먹 리뷰
몇 년마다 한 번씩 중국드라마를 보는 사이클이 돌아오는데, 한드 미드 영드 다 보기 싫은 때 오는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나 뜨개 하면서 볼 것들 중 그나마 '익숙'하고 '길게 볼' 것들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것저것 찍먹해 보니 나는 사극을 좋아하고, 그중에서 일반 고장극(권력, 암투, 로맨스)을 무협극(강호 고수), 선협극(신선과 마족의 등장, 세계멸망 어쩌고)보다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취향으로 골라본 최근 본 중국드라마들의 짧은 리뷰. 대부분 2020~2024년 방영되었다.
리스트업해보니 꽤 많아서 볼 수 있는 플랫폼별로 나누었다. 3편은 현재 중국 OTT의 인터내셔널 플랫폼에서 감상 가능한 작품들이다. 물론 한국 서비스에서 이미 저작권을 확보하였으니 곧 웨이브, 티빙 등에서 볼 수 있다.
안심기
로맨스 고장극 | 라운희, 송일 주연 | 아이치이(iqiyi), 티빙, 웨이브

황실 직속 총포아사의 수장이자 군왕인 강심백은 오래전 가정을 해체하고 아버지를 잃게 만든 '계초'라는 약을 없애기 위해 수사를 벌였다. 강남에서 계초를 추적하던 강심백은 떠돌이 의원 안남성과 우연히 마주치고, 각자의 목적을 위해 위장 결혼이라는 수를 쓰며 인연을 맺는다. 두 사람에겐 각자의 비밀이 있다. 강심백은 어릴 적 당한 사고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가 있고, 이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과 동료들에게 오해를 샀다. 안남성은 매달 '그날'이 되면 생김새는 물론 연령, 성별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그런데 강심백은 안남성을 몇 번이나 알아보고, 안남성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를 돕는다. 안남성은 어릴 적 인연이 닿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 경성에 다다르며 강심백과 다시 인연을 맺고,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우면서 사랑에 빠진다.
우리나라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를 리메이크한 로맨스 고장극. 여주는 한 달에 한 번 일정 기간 동안 변한다, 남주에겐 안면인식장애가 있다 -라는 전체 콘셉트, 인물의 성격과 관계 설정 등 여러 부분은 원작을 가져왔지만 전체적 전개와 개별 사건은 중국 고장극이라는 판 안에서 새롭게 구축했다. 생각보다 로맨스 요소가 많지 않고, 캐릭터 간 관계는 16부작보다 좀 더 촘촘하게 그려진다. 나는 취향이었는데, 대체적으로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라운희와 송일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호흡을 맞추는데 둘 다 쪼그마게 귀여워서 보기 좋았다. 송일이 새삼 상대 배우와 케미가 다 좋다는 게 느껴질 정도. 여기에 심백의 이복동생 사라 역 천야오, 출연하는 작품마다 너무 예뻐서 눈길이 가는 황일영, 숏폼 왕자님에서 장편드라마 서브남주로 발돋움한 승뢰 등이 출연한다.
<안심기>는 그동안 아이치이 국제판 서비스에서 볼 수 있었는데, 10월 9일부터 웨이브, 티빙 등 한국 OTT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
류주기
로맨스 고장극 | 장만의, 왕초연 주연 | 위티비(WETV), 티빙, 웨이브

진주를 지키는 회양왕 최행주는 숙적인 앙산 산적 육문을 추적하던 중 부상을 입고 계곡에서 떨어진 류면당을 구한다. 면당은 의식을 찾았지만 지난 3년간의 기억을 잃고 행주를 자신의 '남편'으로 착각한다. 행주는 육문의 애첩으로 소문난 면당을 구하러 육문이 올 것이라 확신하고 면당의 남편이자 몰락한 상인 집안의 한량 '최구'가 되어 진주 영천진에서 가짜 부부 생활을 시작한다. 행주와 주변 사람 모두가 힘을 합쳐 면당을 속이는 사이, 면당은 몰락한 가업을 세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한다. 행주는 생활력 있고 현명하고 강인하며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는 면당을 사랑하게 되지만, 차마 자신이 회양왕이며 왜 면당을 속였는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행주가 조정의 명으로 전쟁에 나서고 면당이 '일반 병사로 출정하는 남편 최구'를 따라 전선으로 향하면서 그들은 잃어버린 과거와 거짓말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어쩌다 정체를 속이며 '가짜 결혼생활'을 했지만 그 속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랑이자 지기를 만난 남녀의 알콩달콩 스토리로 채운 로코 고장극. 전체 40부작 중 초반부는 <트루먼 쇼>를 연상시키는 류면당과 최구의 "가짜" 결혼생활과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코믹하게 담아냈고, 면당이 자신의 진짜 정체와 자신이 그동안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반부에는 과거의 갈등을 정리한 류면당과 최행주로 다시 만나 사랑을 완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40부작 내내 큰 소동이 없이 잔잔한 편이지만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구축하고 작품의 톤을 유지하는 각본과 연출에 시선이 간다.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특히 <장상사>로 연기존잘 배우의 탄생을 알린 장만의와 외모만큼 연기력도 뛰어남을 보여준 왕초연이 코미디, 로맨스, 멜로, 액션 연기까지 아주 잘 말아준다. <일념관산>만큼 존재감 강한 서브남주를 보여준 상화삼,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한 장치, 류링즈, 원우훤 등도 주목할 만하다.
솔직히 고백한다.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1년에 1편 정도 이렇게 '꽂히는' 드라마가 있는데, 2024년은 <류주기>가 된 듯하다. 40부작인데 메인 커플의 스토리로 꽉꽉 채웠고, 각 파트마다 매력 포인트가 다 다르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은 면당과 행주의 관계와 역학 변화였다. 백그라운드에 깔린 회양왕 최행주와 앙산 산적 육문의 라이벌 관계는 초반부엔 평범한 아녀자 류면당과 그의 가짜 남편 최구의 소박한 삶으로 이어진다. 모든 진실이 드러나고 파국을 맞은 후엔 거짓 관계 속에서 자신의 진심과 열망을 발견한 최행주와 자신의 발목을 잡은 모든 과거를 뒤로 한 류면당이 다시 미래를 약속한다. 상황도 널뛰고 감정도 널뛰기 때문에 각본, 연출, 연기 중 어느 것도 과함이 없이 시청자를 설득해야 하는데, <류주기>는 그 균형을 굉장히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장만의와 왕초연 이야기를 잠깐 하고 싶다. 장만의의 최행주는 정말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였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어디까지 미친놈이 될 수 있는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내가 이만큼 영혼있는 로코 남주를 어디서 봤더라 싶었는데, <브리저튼 2>에서 북치고 장구치며 나와 전 세계 시청자를 무너뜨린 안소니 브리저튼이었다. 장만의와 조나단 베일리 모두 연기로 나를 설득한 로맨스 전문가인 셈. 왕초연은 예전에 열애설의 주인공으로 이름만 아는 수준이었는데, <류주기>에선 코미디부터 액션 연기까지 잘 소화하며 장만의에게 밀리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워낙 예쁜 걸로 소문난 배우인데 그 외모가 그저 배우의 외모가 아닌 캐릭터를 구축한 요소가 되고 나아가 그보다 더 많은 걸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류주기>는 현재 위티비에서 시청 가능하다. 한국 업체가 저작권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조만간 한국 서비스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그 조만간이 어서 오길 바라고 있다 (제발).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12월 3일 한국 OTT 서비스에 공개될 예정이다. 모두 류주기 하시고 짱짱 멋진 면당이와 귀여운 왕야 행주에게 반해보세요!
유수초초
로맨스 고장극 | 임가륜, 리란디, 서정계 주연 | 위티비(WETV), 티빙

월락성 성주의 아들 소무하는 20년 전 한 사건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노예가 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위소'라는 신분으로 황제 직속 광명위의 지휘사로 있다. 악랄하고 잔인한 간신으로 이름을 떨치지만, 위소는 그렇게 해서라도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억울하게 죽은 가족들의 명예를 되찾고 싶다. 그래서 사건의 마지막 목격자를 납치하려고 했는데, 엉뚱한 인물이 그의 계획을 방해한다. 천진난만한 시골소녀 강자는 사신연에 잠입한 위소에게 죽을 뻔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얽힌 복잡한 형세에 끼어들게 된다. 자신을 놔주지 않는 '얌체 고양이' 위소, 목숨을 구해줬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강자를 이용할 수 있는 검정후 배염의 정치 암투 사이에서,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고 물 흐르듯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강자는 나름대로 살길을 도모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배염과 위소의 과거와 그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서 강자의 마음도 한 곳으로 흘러간다.
<류주기> 후속으로 서비스 중인 로맨스 고장극. 우리나라 중국드라마 팬 사이에서 팬덤이 탄탄한 임가륜과, 서정계, 리란디 등 중국드라마를 즐겨보는 팬들에게 익숙한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처음엔 좀 심드렁하게 시작했는데, 10화쯤 접어들면서 한 화씩 제대로 각 잡고 보고 있다가, 종영이 얼마 안 남았을 땐 가슴을 쥐어뜯었다. 정치적 라이벌인 두 남자와 어쩌다 이 판에 끼어든 소녀가 삼각관계를 제대로 말아주는데, 관계가 굉장히 독특해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세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 중요한 걸 지키기 위해, 또는 평생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 속고 속이고 이용하고 협박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걸 서슴지 않는데,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사건을 경험하고 과거와 현재를 알고 이해하면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1화에 칼빵 놓는 위소와 강자가 어떻게 이렇게 절절하게 사랑하냐고요? 나도 여기에 설득될 줄 몰랐다. 그런데 강자의 강인함과 의지를 위소가 이해하면서, 위소가 긴 세월 동안 겪은 고통을 강자가 이해하면서, 두 사람은 그렇게 사랑에 빠지게 되더라. 위소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잔인한 선택을 했고, 강자는 그 선택의 결과가 치가 떨리게 싫지만 그럼에도 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위소도 강자의 소망을 지키는 걸 자신의 사랑이자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무조건 강자를 옆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걸 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 배염은 강자를 결국 이해하지 못했고 매번 엇나간 선택을 하면서 강자와 어긋난다. 배염이 강자처럼 흐르는 물같이 멀리멀리 떠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건 또 아니라서.
중드 고장극을 본다면 임가륜의 작품은 한 번씩 봤을 텐데, 난 <주생여고>만 봤다. 위소를 보며 자연스럽게 주생진이 떠올랐는데, 주생진이 도끼질에 쓰러졌지만 여전히 그 위용을 뽐내는 거목 같다면, 위소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걸 알면서도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았다. <주생여고> 이후 임가륜의 드라마가 크게 재미없었어도 <유수초초>는 취향에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내 <유수초초> 최고의 수확은 리란디. 강자가 요즘 시각에서 보면 민폐 캐릭터로 등극하기 딱 좋은데, 리란디는 강자의 성격과 매력을 어필하면서 이 목숨이 위태로운 삼각관계를 주도하는 자임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연기 너무 잘해서 뭘 해도 다 예뻐 보인다.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 <성락응성당>부터 먼저 봤다. 얼마 전 촬영 마친 <조설록>도 얼른 보길 기대한다.
<유수초초>는 위티비에서 시청 가능하다. 중화TV가 방영권을 확보했고, 2025년 1월 8일 방영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1화부터 10화까지 한 번에 몰아본 후에 11화부터 본방 사수하는 걸 추천한다. 초반 회차를 보며 느낀 물음표가 10화부터 어느 정도 해결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