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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타도화일세개' 꼭 봐주기야 | 과몰입한 '나'를 위해 쓰는 최종화 감상

The Winter Moon 2025. 2. 16. 10:33

<천타도화일세개>가 끝났다. 설 연휴 주말에 익스프레스 패키지로 최종화까지 오픈됐고, 나는 또 홀린 듯이 유쿠에 내 6천 원을 바쳤다. 하아... 상술에 놀아나는 호구야. 암튼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데, 이 맘을 달래려면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름 써 보는 내가 본 <천타도화일세개>와 사설신, 모현령, 남서월, 고추민, 부란생의 이야기.

​여러분, 한국에 <천타도화일세개> 정식 서비스하면 꼭 봐주기야. 약속해 줘요. 



그전에 <천타도화일세개>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유쿠에서 공개한 40부작 선협 로맨스 드라마이며, 세계의 위기 앞에서 창생을 지키는 남자와 그를 사랑한 영족 여인의 생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로, 사랑과 창생을 두고 고민하는 선협의 그 맛을 담았다. 그런 줄 알고 시작했는데, 의외로 대의와 개인의 감정을 저울질하며 인간의 자유 의지와 사랑, 대의와 희생, 이기심과 이타심 등 다양한 감정을 잘 담아냈다. 하, 아는 그 맛 느끼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감정이 깊을 줄은 몰랐다.


여기서부터는 최종화까지 본 자의 감상이 있기 때문에, 결말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스포일러가 없는 감상을 원하거나 시리즈 정보가 필요하다먼 이 글을 추천한다. 

 

 

대봉타경인, 촉금인가, 천타도화일세개 - '24~'25 최신 중드 찍먹 감상

여전히 중드 잘 챙겨보고 있고요 ㅎㅎ 티빙에서 서비스 중인 드라마도 많이 보고 있지만 최신작도 꾸준히 챙겨보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2025년 1월 봤거나 보는 중인 고장극들 소개할게요. 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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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신아 사설신아. 정말 미칠 것 같다. 전형적인 선협 히어로인데, 그래서 그의 선택과 결론은 언제나 예상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하는 모든 사고는 예상을 비껴간다. 

 

사설신도, 1만 년 전 그인 성군 소명도, 1만 년간 용암 지옥에 갇혀 있던 마존도, 결국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에 대한 한점의 후회도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인간을 사랑하고 위하는' 행동의 시작은 신이라는 이유로 인간을 탄압하는 신족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는 신이 인간을 '수호'한다는 이유로 부려먹고 이용하며 탄압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쓸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권한을 박탈하려는 자들 - 설마 그게 하늘 그 자체라도 - 을 반드시 없애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하늘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에게 빙의하여 그가 만들었지만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을 완전히 정리하려 했고, 그에 대항해 사설신과 소명은 1만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손을 잡는다. 그들의 계략이 성공하여 모든 것을 해결하였을 때, 그들에겐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이 남아 있다. 세상을 지키기 위해 주요한 사건들을 일어나게 하려면, 소명은 1만 년 전 그때처럼 신계로 올라가 신족들을 처단해야 하고, 잘못된 길로 빠졌다는 오명을 쓰고 암계의 용암 지옥에서 1만 년을 다시 버텨야만 한다. 그리고 힘이 다하여 소멸한 1만 년 전 소명 대신, 이미 1만 년 동안 고통에 몸부림쳤던 마존은 또다시 1만 년을 고통 속에 지내야 한다. 그래서 아주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도 된다고 애써 위로할 때, 거짓 위로에 고마워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솔직히 소명과 마존이 계략으로 하늘을 처단한 후에 '이제 끝났구나!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한 고통이 남아 있었다. 이 부분에서 골이 띵해질 만큼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잔인한 운명을 다시금 받아들이는 소명을 보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선택을 할 가치가 있었나요?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다면 그 선택을 나도 원망했을 것 같다.

 

 

 

모현령의 이야기는 사설신과 함께 하지만, 또 따로 간다. 1만 년 전 아주는 티끌 한 점 없이 태어나 사랑과 정의, 희생과 인과를 제대로 배워서 사랑하는 사람과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1만 년 후 모현령은 무지하고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핍박당했지만 그 사이에서 자신을 구원해 준 누군가를 위해 기다리고 인내하는 여인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아주와 모현령의 인생은 소명과 사설신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소명이나 사설신은 아주와 모현령이 그 자체만으로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아주도 모현령도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희생하고 기다리고 인내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의 길을 가는 동안 그를 묵묵히 기다린다. 

 

모현령이 돋보이는 이야기는 초반에 집중되어 있고, 드라마 후반부에는 순수한 존재 혼돈주가 사람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세상을 품고 억겁의 윤회를 감내하기로 선택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소명과 천명서의 스토리와 감정이 강력해서 아주의 순수함이 돋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결국 지금의 세상을 만든 건 아주의 선택이었다. 모현령으로 살며 사설신과 정말 행복하길 바란다. 진심이야.

 

 

 

사설신과 모현령의 관계는 드라마 내내 다채롭게 변화한다. 모현령은 사설신에게 무차별적으로 플러팅하는 가운데 그에 대한 깊은 사랑을 키워간다. 사설신은 사랑 공세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모현령의 장난 같은 말투와 행동에서 진심을 발견하고 그에게 푹 빠진다.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면서 엇갈리는 듯하지만, 이들의 윤회의 시작인 1만 년 전 아주와 소명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시작된다. 소명을 통해 사랑을 배운 아주와 아주에게 자기 의지를 배우고 자유를 주고픈 소명은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1만 년 후, 혼돈주의 현신인 게 밝혀진 모현령과 용암 지옥에서 탈출한 소명, 아니 마존은 서로에게서 그들의 사랑을 찾으며 '혐관' 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모현령이 말했듯이, 모현령이 사설신을 찾듯 마존도 그의 아주를 찾고 있고, 각자 서로에게서 그들의 흔적을 찾기 때문에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관계가 된다. 저렇게 목을 조르고 하는 거는... 어쩔 수 없다. 일단 둘을 서로를 굉장히 미워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천타도화일세개>에서 가장 공명하는 지점은 남서월/천명이 아닐까. 모현령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결국 얻지 못한 남서월은 자신의 계략 때문에 모현령이 죽게 되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진짜예요.) 그러면서 1만 년 전 그의 인격이었던 신기 천명서가 그의 몸에 다시 내리고, 그는 1만 년 전 이루지 못한 아주/모현령에 대한 집착을 다시 활활 불태운다. 하지만 "사랑은 없어도 된다. 내 곁에만 있어라."라는 그의 말은 1만 년 전 아주에게도, 1만 년 후 모현령에게도 씨도 먹히지 않는다. 결국 천명이 1만 년 동안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겁의 내용이 밝혀지는데, 여기가 진짜 찌통 구간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사랑받을 수 없으며 누구를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다. 평생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완전하게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최후의 순간 모현령이 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여전히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1만 년간 인간계에서 윤회하며 수많은 삶을 살아보고 난 후, 사랑은 다채로운 감정이라는 것, 집착하는 것도 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천명은 모현령을 위해, 상고 시대부터 자신과 함께했던 혼돈주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자신이 아는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고 완성한다.  

​천명 등장 초반에 장례물품에 쌍희를 새기는 걸 보고 세기의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는데, 그가 평생 '사랑'이라는 감정을 탐구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행히 이번 생에 '남서월'로 살 때는 그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이들이 있었다. 사랑의 대상이 된 모현령. 모현령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친구 사설신. 그리고 오래전 옷깃을 잡은 뒤로 그의 곁에서 죽을 때까지 함께해 준 심복 봉요. 특히 봉요의 희생은 천명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그 지점에서 배우들의 연기도 연출도 각본도 미친 것 같았다.

 

 

 

사랑과 창생 앞에서 고민하는 세 남녀 사이에서 조용히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간 청양공주와 아염. 삶 자체가 고통이었기에 서로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그들은 1만 년 후에는 그때보다 걱정도 고민도 덜한 고추민과 부란생으로 태어나 솔직하게 표현하고 사랑하고 삶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한다. 아무래도 서브 커플이라 사설신-모현령-남서월 만큼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분위기 환기하는 타이밍에 매우 적절하게 등장했다. 두 사람 또한 억겁의 윤회와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각자 꿈을 이루고 사랑도 키워가며 잘 살 것이다. 사설신-모현령보다 더한 커퀴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드라마는 갔고, 나만 여기 남아 이렇게 흑흑 울면서 해소되지 않는 감정을 글로 쓴다. 아직 한국 방영 전이니까 조금만 더 붙잡아도 되지 않을까. 조금만 더 즐길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