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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관산, 여봉행 - 티빙/웨이브 중드 찍먹 감상

The Winter Moon 2024. 9. 28. 00:13

몇 년마다 한 번씩 중국드라마를 보는 사이클이 돌아오는데, 한드 미드 영드 다 보기 싫은 때 오는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나 뜨개 하면서 볼 것들 중 그나마 '익숙'하고 '길게 볼' 것들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것저것 찍먹해 보니 나는 사극을 좋아하고, 그중에서 일반 고장극(권력, 암투, 로맨스)을 무협극(강호 고수), 선협극(신선과 마족의 등장, 세계멸망 어쩌고) 보다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취향으로 골라본 최근 본 중국드라마들의 짧은 리뷰.
 
 

일념관산

무협 로맨스 | 류시시, 류우녕 주연 | 티빙

오국은 안국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오국 황제는 포로로 잡힌다. 안국이 몸값으로 요구한 황금을 전하고 황제를 구하기 위해 오국의 첩보집단 육도당 당주 녕원주와 육도당 형제들은 친왕으로 위장한 공주 양영을 모시고 안국으로 떠난다. 안국 황제 직속 첩보집단 주의위의 전 좌사(이인자) 임여의는 5년 전 은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죽음을 위장해야 했다. 그는 우연히 만난 녕원주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주의 스승으로 사절단에 합류한다. 여의는 은인의 유언에 따라 '아이를 낳자'며 녕원주에게 접근하고, 원주는 여의의 전방위적 플러팅(!)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빠져든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살수/첩보원의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함께 하면서 지금까지 감히 꿈꾸지 못한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이들의 여행은 오국과 안국뿐 아니라 북반 세력과 대치한 천하 전체를 뒤흔들 여행이 되는데...

 
비장하면서도 경쾌하고, 코믹한데 눈물콧물도 쏙 빼는 무협 로맨스라니.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키워드들이 <일념관산>을 모두 설명한다. 오국에서 안국으로 향하는 위험천만한 여정에는 능력치 만렙인 두 주인공의 로맨스, 육도당 형제들의 목숨보다 소중한 우정, 어린 울보 공주가 정세를 뒤흔들 만한 상징으로 거듭나는 성장, 권력을 놓고 벌이는 암투 등이 모두 있다. 생각보다 말랑말랑해서 놀라운데, 특히 사절단의 위험천만한 여행만큼 여의원주 커플의 썸 → 럽 과정이 정말 예쁘게 그려진다. 데이트하는 장면도 많아서 현대극을 보는 느낌도 있다. 
 
나는 류시시가 호감이라 이 드라마를 시작했는데, 끝날 때는 류우녕이라는 배우에게 큰 호감이 생겼다. 190cm의 큰 키에 고장극 의상이 충격적으로 잘 어울리는 남배우라니. 류시시와 덩치차이도 너무 좋고 잘 어울린다.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여의, 원주, 여의❤️원주와 사랑에 빠진다. 중드에서 보기 힘든 능력치 만렙 캐릭터 둘이 어느 한쪽이 밀리는 법 없이 로맨틱 코미디부터 멜로까지 다 말아주는데 왜 안 그러겠어요. 그리고 이 드라마엔 중드 집착섭남 계보를 이을 캐릭터 '이동광'이 있다. 나는 이동광 얼굴을 물에 담그면서 원주가 한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고 본다. 캐릭터이니까 사랑하는 거예요.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를 써가는 양영, 하나하나 개성 뚜렷한 육도당 형제들까지, 캐릭터의 힘과 매력이 드라마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이 드라마 검색하다 보면 엔딩에 대해 말이 많다. 한줄기 희망도 다 앗아가 버리는 엔딩ㅋㅋㅋㅋ 나도 물론 화가 나지만 납득은 된다. 그렇지만 마지막 3분은 없는 게 좋았다고 본다. 만약 보실 거라면 마지막 회의 마지막 3분(어디인지 감이 온다)은 안 보시는 걸 추천한다.
 

여봉행

선협 로맨스 | 조려영, 임경신 주연 | 웨이브, 티빙

마계(영계) 벽창왕 심리는 원치 않는 혼인을 피해 도망치다가 인간계로 떨어진다. 작은 봉황으로 변한 그녀를 구해준 이는 병약하지만 평범해 보이진 않는 인간 행운. 그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마계로 돌아온 심리는 전장에서 행운과 똑같이 생긴 상고신 행지를 만난다. 마계를 위해 선계와 정략혼을 해야만 하는 심리와 세계를 흔들 힘을 가졌기에 무엇에도 애정을 쏟지 말아야 하는 상고신 행지. 하지만 천년 전 행지가 봉인한 허천연에서 이매(마물)들을 꺼내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여러 사고가 발생하고, 심리와 행지는 이를 함께 해결하면서 가슴속 묻어둔 감정을 자꾸만 대면한다. 결국 목숨을 잃을 위기를 겪으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 하지만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 둘은 삼계의 미래를 건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는데...

 
선협물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을 깨준 작품. 그런데 생각해보니 선협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선협물의 남여주 캐릭터와 관계 설정이 아쉬울 뿐이었다. <여봉행>의 심리는 봉황의 힘을 타고난 마계 최고의 무장으로, 마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쯤 되면 이게 남주 포지션인데, 놀랍게도 행지는 1만 년 이전부터 존재한 상고신이다. 그리고 <여봉행>은 이걸 너무 잘 알아서 감정을 마주하길 주저하는 두 캐릭터가 결국 사랑과 대의 모두를 택하는 이야기다(이런 경우에 끝은 거의...). 그 과정이 다른 선협로맨스보다 애절하지 않다(?)는 게 독특한 점이긴 한데, 그만큼 코미디를 버무렀다는 뜻이겠지. 원래 멜로나 액션은 전 세계 어디를 가져다 놔도 공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코미디는 '코드'가 맞아야 즐겁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봉행>의 코미디는 내 코드에 맞았다.
 
사실 <녹비홍수>로 알게 된 조려영의 작품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녹비홍수>가 명작이라서 그렇지 <여봉행>도 오랜만에 보는 그의 드라마로는 손색없었다. 그리고 임경신은 유명하긴 하지만 제대로 본 작품이 없었는데, 행지 역을 잘 소화했다(처음 캐스팅 발표됐을 때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특공황비 초교전>에서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춘 사이라는데(역시 방영한 지 꽤 된 드라마라 안 봄) 2023년에 다시 만나서 확실한 연기 호흡을 보여줬다.
 
추. 자신의 마음을 애써 부정하던 남주가 여주의 위기 앞에서 녱글 돌아서 세상을 때려 부술 것 같이 행동하는 거 너무 맛있다. 상고신 행지는 과연 무슨 짓을 했을까? 직접 보고 확인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