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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린

The Winter Moon 2022. 12. 22. 23:14


가가린
가가린 옥상에서 하늘을 보며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10대 소년, 유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키운 공간이었던 가가린 주택단지의 철거가 결정되고, 유리는 가가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유리는 자신의 우상이자 우주, 그리고 집이었던 가가린 주택단지를 지켜낼 수 있을까?
평점
5.0 (2022.12.22 개봉)
감독
파니 리아타르, 제레미 트루일
출연
알세니 바틸리, 리나 쿠드리, 자밀 맥크라벤, 피느간 올드필드, 파리다 라우아디, 드니 라방


영화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갔을 때 얼마나 받아들이고 따라갈 수 있을까? (이해와 감상은 차치하고) <가가린>은 영화를 둘러싼 배경지식을 미리 알지 않아도 충분히 따라가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도 발견하고 감상도 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다. (보실 분들은 영화 정보 사이트에 있는 프로덕션 노트를 훑어보고 가시라는 말이다.)

16세 소년 유리는 파리 외곽의 큰 벽돌건물 아파트 ‘가가린’에서 자랐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똑똑하고 손재주 많은 소년에게 이곳은 어머니가 떠난 이후 자신을 보듬어준 유일한 공동체다. 이곳이 안전 문제로 철거가 결정되고 함께 살던 사람들이 떠나도, 유리는 가가린을 떠날 수 없다. 그건 그의 의지도 있지만, 새 가정을 꾸린 어머니가 그를 방치한 결과이기도 하다. 철거 작업이 계속 진행되면서 가가린은 바깥 세계와 완전히 고립되지만, 유리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인처럼 먹고, 식물을 키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고 누군가에게 들킬 위험도 커져간다. 유리는 자신의 뿌리인 가가린을, 자신이 만들고 가꾼 작은 우주선을 지킬 수 있을까?

영화는 이상적 공동체와 화려한 영광의 상징으로 세워진 아파트가 빈곤 문제로 슬럼화된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큰 꿈과 이웃의 따스한 사랑으로 하루하루 버텼던 유리의 위기와 고립도 다룬다. 그렇지만 그게 마냥 냉정하고 차갑진 않다. 유리가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는 과정은 신나고, 친구에서 연인이 된 디아나와 함께 하는 순간은 달콤하다. 하지만 그의 우주는 인부들의 작업화에 짓밟히고 계절을 이겨내지 못했고, 디아나와의 행복한 순간은 또다른 현실의 개입 때문에 끝나고 말았다. 유리가 현실과 하나둘 단절되며 고립될 때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서서히 지워간다. 마지막 장면은 현실과 환상이 완전히 뒤범벅되어, 슬프고 안타까운데도 유리의 미소를 보면 마냥 가슴아프진 않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이 참 좋았다.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의 냉정함을 놓치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준 시대의 유산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이를 특별한 기록으로 남기려는 시도가 빛난다. 유리 역의 알세니 바틸리, 디아나 역의 리나 쿠드리의 연기도 훌륭했다. 과학을 좋아하고, 따스하고 다정하기에 더 외로운 유리는 바틸리의 퍼포먼스로 완성된다. 그리고 음악! 음악이 정말 좋다. 이게 앰비언스인가? 아무튼 음악들이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후반부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는 데 음악이 큰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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