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Your Thoughts Flow
가가린 본문
- 평점
- 5.0 (2022.12.22 개봉)
- 감독
- 파니 리아타르, 제레미 트루일
- 출연
- 알세니 바틸리, 리나 쿠드리, 자밀 맥크라벤, 피느간 올드필드, 파리다 라우아디, 드니 라방
영화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갔을 때 얼마나 받아들이고 따라갈 수 있을까? (이해와 감상은 차치하고) <가가린>은 영화를 둘러싼 배경지식을 미리 알지 않아도 충분히 따라가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도 발견하고 감상도 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다. (보실 분들은 영화 정보 사이트에 있는 프로덕션 노트를 훑어보고 가시라는 말이다.)
16세 소년 유리는 파리 외곽의 큰 벽돌건물 아파트 ‘가가린’에서 자랐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똑똑하고 손재주 많은 소년에게 이곳은 어머니가 떠난 이후 자신을 보듬어준 유일한 공동체다. 이곳이 안전 문제로 철거가 결정되고 함께 살던 사람들이 떠나도, 유리는 가가린을 떠날 수 없다. 그건 그의 의지도 있지만, 새 가정을 꾸린 어머니가 그를 방치한 결과이기도 하다. 철거 작업이 계속 진행되면서 가가린은 바깥 세계와 완전히 고립되지만, 유리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인처럼 먹고, 식물을 키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고 누군가에게 들킬 위험도 커져간다. 유리는 자신의 뿌리인 가가린을, 자신이 만들고 가꾼 작은 우주선을 지킬 수 있을까?
영화는 이상적 공동체와 화려한 영광의 상징으로 세워진 아파트가 빈곤 문제로 슬럼화된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큰 꿈과 이웃의 따스한 사랑으로 하루하루 버텼던 유리의 위기와 고립도 다룬다. 그렇지만 그게 마냥 냉정하고 차갑진 않다. 유리가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는 과정은 신나고, 친구에서 연인이 된 디아나와 함께 하는 순간은 달콤하다. 하지만 그의 우주는 인부들의 작업화에 짓밟히고 계절을 이겨내지 못했고, 디아나와의 행복한 순간은 또다른 현실의 개입 때문에 끝나고 말았다. 유리가 현실과 하나둘 단절되며 고립될 때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서서히 지워간다. 마지막 장면은 현실과 환상이 완전히 뒤범벅되어, 슬프고 안타까운데도 유리의 미소를 보면 마냥 가슴아프진 않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이 참 좋았다.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의 냉정함을 놓치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준 시대의 유산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이를 특별한 기록으로 남기려는 시도가 빛난다. 유리 역의 알세니 바틸리, 디아나 역의 리나 쿠드리의 연기도 훌륭했다. 과학을 좋아하고, 따스하고 다정하기에 더 외로운 유리는 바틸리의 퍼포먼스로 완성된다. 그리고 음악! 음악이 정말 좋다. 이게 앰비언스인가? 아무튼 음악들이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후반부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는 데 음악이 큰 몫을 한다.
'Mov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에 하는 2022 영화 연말정산 (0) | 2022.12.31 |
---|---|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1) | 2022.12.31 |
코르사주 (0) | 2022.12.21 |
아바타: 물의 길 (0) | 2022.12.16 |
화이트 노이즈 (0) | 2022.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