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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사주

The Winter Moon 2022. 12. 21. 23:56

코르사주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1킬로의 머리를 이고 우아하게 앉아있는 것뿐이다. 갑갑한 황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엘리자베트는 자유를 찾아 자신을 조이던 코르사주를 벗고 스스로의 초상을 완성하려 한다.
평점
10.0 (2022.12.21 개봉)
감독
마리 크로이처
출연
빅키 크리엡스, 플로리안 타이트마이스터, 아론 프리즈, 로자 해야이, 카타리나 로렌츠, 잔 베르너, 마누엘 루베이, 콜린 모건, 알마 하순, 피느간 올드필드, 릴리 마리 쇼트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왕비라는 찬사를 받았던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 우리나라에선 아마도 역덕이나 뮤덕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인물일 것이다. <코르사주>는 화려해 보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실 이면에서 개성과 생각할 권리 모두 빼앗긴 황후가 자신의 존재와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전기 영화이지만 이 영화 전체가 사실은 아니다. 사실과 허구가 뒤범벅되어 있고(감독은 꽤 많은 부분이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상상의 산물이라 밝혔다), 영화가 하고픈 이야기에 있어 이게 진짜 맞녜 안맞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단 비키 크리엡스의 연기는 정말 미쳤고요 ㅎㅎ <팬텀 스레드> 이후 그가 출연한 영화를 꽤 챙겨보는 것 같은데(라고 하지만 세보니 몇 편 안 되더라고) 몇 달 전 본 <베르히만 아일랜드>나 <코르사주>에서는 이 배우의 파워를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엘리자베트는 빛나는데 어둡고, 유연한 듯하면서도 부러질 것 같고, 너무나 아름다운데 손에 쥐면 바스러질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황후인데 퍼석하고 생기 없는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내 숨이 막히는 기분. 거기에 신경질을 내면서 시녀에게 코르사주, 코르셋을 계속 조이라고 하는 걸 보면 더 갑갑해진다.

황실이 엘리자베트에게 원하는 건 두 가지뿐이다. 후계자를 낳는 것, 황실의 꽃이 되는 것. 후계자는 낳았지만 직접 키울 순 없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끔 엄격한 규율과 충돌하며 황실 내 불화를 일으킨다. 그 상황에서 엘리자베트는 목소리를 내지만 비판받고 무시당한다. 그 시대 황후의 역할이란 그저 긴 머리를 예쁘게 치장하고 모든 국민이 우러러볼 만한 황실의 상징이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누구도 엘리자베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이 없다. 박제된 삶에서 황후 헌정가가 무슨 즐거움과 기쁨을 줄까.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의 불화, 자신을 닮은 아들과의 갈등, 그나마 자유롭게 크길 바라지만 스스로 황실의 일원으로 크길 바라는 막내딸. 가족은 누구도 엘리자베트를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 우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애정을 표시하며 엘리자베트에게 부담을 주고, 우정과 사랑을 모두 나눴다고 생각하는 이는 엘리자베트를 욕망하지 않는다. 남편인 황제는 자신을 사랑하고 욕망하지만 그뿐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삶에서 여행과 승마만 거듭하는 엘리자베트는 결국 머리를 자르고 코르셋을 풀고 스스로 은둔하며 자유를 찾는다.

음, 여기까지 쓴 것만 보면 이 영화가 굉장히 통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한 여성이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봉쇄당한 채 말라죽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엘리자베트에게 동정심이 생기다가도 없어지는 게, 자신의 자유를 위해 주위 사람들의 삶을 쥐고 그들의 주체적 선택을 빼앗는다. 황후라는 자리에 요구되는 굴레는 자신에게서만 끝내길 바랐는데, 그게 아니게 되는 순간부터 입맛이 씁쓸해졌다. 분명 그 상황에서 엘리자베트가 이성적이고 이타적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이 인물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러는 게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욱 올바른 선택을 강요하는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암튼, 이래저래 생각이 복잡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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